혼인은 남녀의 애정을 바탕으로 하여 일생의 공동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도덕적·풍속적으로 정당시되는 결합으로서
부부 사이에 동거하고 서로 부양하며 협조하고 자녀를 출산하여 양육하는 것 등을 본질적 내용으로 하는 것이므로,
혼인을 무효로 하거나 그 혼인을 취소하는 등 혼인의 효력 자체를 부인하는 경우에는
그 혼인이 위와 같은 혼인의 본질에 반하는 것으로서 법률, 도덕, 관습 등 혼인질서에
합치되지 않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민법 제816조 제3호는 혼인의 효력을 부인해야 할 혼인취소 사유의 하나로서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하여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때'를 규정하고 있는바, 이는 혼인의 당사자 또는 제3자의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하여
혼인의 의사형성과정에 하자가 존재하는 경우 혼인의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여
혼인의 의사결정의 자유를 보호함과 아울러, 하자 있는 의사표시에 의해 성립된 혼인관계를 해소시켜
법률, 도덕, 관습 등에 부합하는 온당한 혼인질서를 확립하려는 데 그 입법 취지가 있습니다.
위 법 규정이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사기 또는 강박에 의하여 혼인의 의사형성과정에
하자가 존재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의사결정능력 및 판단력에 심각한 장애가 있는 상태에서
혼인의 의사표시가 이루어진 경우 등과 같이 혼인의 취소를 통해 혼인의 의사결정의 자유를 보호하고
온당한 혼인질서를 확립해야 할 필요성이 충분히 인정되는 경우에는 위 법 규정을 유추적용하여
혼인의 취소를 허용하는 것이 혼인제도의 본질적 의미 및 위 법 규정의 입법 취지에 부합하는 해석일 것입니다.
위 법률이 적용된 사례로는
원고는 뜻하지 않게 임신중절수술을 받고 피고의 결혼 전력을 알고 난 후부터 수치심, 피고에 대한 분노,
배신감 등으로 인하여 피고를 폭행하거나 자해를 하는 등의 정신이상 증세를 나타내기 시작하여,
2003. 5. 7.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 정신과에서, 2003. 6. 16.부터 2003. 8. 13.까지 한국정신과의원에서,
2003. 8. 8.부터 같은 달 11.까지 한빛 신경정신과의원에서 각 정신과 진료를 받았는데,
위 각 병원에서는 모두 '원고가 피고를 좋아하면서도 피고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로 인하여 자해를 하는 등의
정신이상 증세를 나타내고 있으므로 정신과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진단을 하였습니다.
이에 원고는 2003. 8. 18. 국립서울병원으로부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고 2003. 12. 1.까지
폐쇄병동에서 입원치료를 받게 되었는바, 이에 비추어 보면 원고는 혼인신고일인 2003. 7. 24. 당시에도
위와 같은 정신분열병 질환을 앓고 있었고, 이로 인하여 의사결정능력 및 판단력이 매우 제약된 상태에서
피고에게 이끌리어 혼인신고를 하였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으므로, 위와 같이 하자 있는 의사표시에 의하여
성립된 이 사건 혼인에는 혼인취소 사유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한편, 원고가 가족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피고를 찾아가 피고와 동거한 사실,
원고 스스로 혼인신고서의 '처'란을 작성하여 피고와 함께 직접 혼인신고를 한 사실,
원고가 2003. 8. 9. 피고와 함께 정신과 진료를 받은 위 대학병원 정신과 진료기록에
'원고가 피고와 합의해서 혼인신고를 했다.'는 취지의 원고 진술 내용이 기재되어 있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심 증인 소외인의 증언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원고가 피고에 대한 분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직접 혼인신고를 하는 등 피고를 좋아하는 듯한 일련의 행동을 나타낸 것은 원고와 같은 정신분열병 환자에게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이른바 '양가감정(자신을 학대한 사람에 대해 미움만 갖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복종하거나
그에게 끌리는 마음을 갖는 것과 같이 한 가지 대상을 접할 때 대립되는 감정이 동시에 느껴지고
이러한 감정의 통합을 이루지 못해 생기는 증상 내지 심리현상)'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이에 비추어 보면 앞서 인정한 사실만으로 이 사건 혼인이 원고의 하자 없는 진의에 의해 성립되었다고 볼 순 없습니다.
그렇다면 원고의 주위적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고, 예비적 청구는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할 것인바,
제1심판결은 예비적 청구에 관하여 이와 결론을 달리하여 부당하므로 제1심판결 중
예비적 청구에 관한 부분을 취소하여 이 사건 혼인을 취소하기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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